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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말고 박정희 대통령, 역사 속 계엄 선포 정리

by halona777 2025.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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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선포

 

박정희 대통령, 역사 속 계엄 선포 정리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정변을 통해 정권을 잡은 후,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차례 계엄을 선포하며 강력한 통치 방식을 유지했다. 그의 계엄 선포 사례를 살펴보면, 정치적 격변기마다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 1961년 5·16 군사정변 계엄 선포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이를 통해 국회 해산, 정치활동 정지, 언론 검열 등의 조치가 시행되었으며, 군사정부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구성하여 통치를 시작했다.

2. 1971년 10월 위수령 및 계엄 선포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야당 후보 김대중과의 접전 끝에 승리했지만, 선거 후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자 같은 해 10월 서울 지역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이후 12월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치안 강화를 명목으로 군이 직접 개입하는 체제를 유지했다.

3. 1972년 10월 유신 계엄령

박정희 대통령의 가장 대표적인 계엄 선포 사례는 1972년 10월 17일, '10월 유신'을 위한 계엄령이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유신체제를 선포했다.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졌으며, 정치 활동이 전면 금지되었고,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되었다. 이후 유신헌법이 만들어지면서 대통령의 장기 집권이 가능해졌고, 박정희 정권은 사실상 종신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4. 1979년 부마항쟁과 계엄 선포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주화 시위인 부마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는 10월 18일 부산에 위수령을 발동했고, 다음 날인 10월 19일에는 부산과 마산 일대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군부 내에서도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해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되면서 막을 내렸다.

결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장기 집권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경우가 많았다. 그의 통치는 경제성장과 산업화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강압적인 정치 방식과 국민의 자유 억압으로 인해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계엄 조치는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사적 교훈으로 남아 있다.